천국으로 향하는 걸음
- Frenzi
- Jul 27, 2018
- 6 min read
Updated: Jul 28, 2018
자그마치 32일. 프랑스 Saint Jean Pied de Port에서 시작해 스페인 Santiago de Compostela까지 이르는 Camino de Santiago의 여정을 끝냈다. 우리말로 야고보, 고기 낚는 어부였던 그(Santiago)는 예수가 처형된 후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까지 걸어왔다고 한다. 그의 자취를 따라 피레네산맥을 넘고, 끝없는 밀밭과 포도밭을 지나 습한 공기를 품은 우거진 숲길을 걸었다. Compostela로 향하는 길을 안내하는 노란 화살표를 등불 삼아 7kg가량 되는 생존의 무게를 짊어지고, 두 다리와 스틱에 의존해 800km를 걸어온 순례자로서의 한 달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사진 1-1. 까미노의 상징적인 표식인 노란색 가리비와 화살표. 대부분은 도로나 가드레일에 노란색 페인트로 화살표가 그려져있다


*사진 1-2, 1-3. 가끔씩 마을의 건물에 도착까지 몇km 남았는지 표시되어있는 경우가 있다
까미노를 걷는다고 하면 천주교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필자는 현재 무교이다. 하지만 여러 종교에 인연이 많다. 어렸을 때 7년간 교회에 다녔고, 나의 이름과 자(字)는 스님께서 지어주셨으며, 절에 몇 달간 산 적도 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땐 지인을 통해 수사님과 친해져 여러 번 상담도 받고, 미사나 기도 모임에 간 적도 있다. 특정 신에 대한 확신은 아직 없지만, 각 종교에서 추구하는 바와 교리는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실천을 도모하며, 그 끝은 모두 통한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필자에게 까미노는 관계와 미디어의 홍수,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신경 써야 할 자잘한 것들에서 벗어나 내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오롯이 나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소박한 기쁨 속에서, 이러한 걸음이 중심이 되는 삶을 통해 나를 바꾸고 싶었다.

*사진 2-1. 순례자들이 하나씩 옮겨놓아 만들어진 돌무더기 위에 십자가가 서있다.

*사진 2-2. 이렇게 돌로 하트를 만들어놓은 걸 종종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만들기도, 헷갈리는 길에 노란 화살표 대신 돌로 표시해주기도 한다.
순례자의 하루는 참으로 간단하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걷고, 중간중간 있는 마을 바에 들러 쉬었다가 다시 걷는다. 점심 조금 지나 도착하면 씻고, 쉬었다가 저녁을 먹은 후 일찍 잠자리에 든다. 그야말로 의식주에 충실한 나날이다. 육체노동이 주가 되고 외부와 단절되어있는 삶에선 머리를 비우고, 또다시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으로 하루를 채울 수 있다. 그렇게 비움과 고찰을 통해 성숙해지는 과정으로써 까미노를 걸었다.

*사진 3-1. 동틀녘의 까미노. 출발은 대개 새벽 5~6시에 한다

*사진 3-2. 철의 십자가는 생각보다 작았다. 여기서 보는 일몰이 예쁘다하여 해가 뜨기 전에 도착했다.
목적이 꼭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국가와 길 자체의 특성 때문에 가톨릭의 향기 안에서 계속 숨 쉬게 된다. 스페인어로 이름을 묻는 표현에서는 ‘which’에 해당하는 단어를 쓰는데, 이는 천주교의 세례명 중에 하나를 골라서 이름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스페인엔 천주교가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명확한 예시는, 집 몇 채 달랑 있는 아주 조그만 마을에도 성당이 꼭 있다는 점이다.
정시마다 시간을 알려주는 푸르른 종소리는 까미노의 일상이다. 그리고 가끔 크고 하얀 날개로 순례자들의 이목을 끄는 새들이 있는데, 이들은 황새로, 성당에 집을 짓는다. 마을을 거닐다 보면 황새가 성당 종 위에 커다란 둥지를 틀고 우아한 자태로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순례자용 숙소인 알베르게(albergue)를 기부제나 저렴한 값으로 같이 운영하는 성당이 있는데, 이런 곳의 경우 매일 저녁 순례자를 위한 미사를 진행한다. 물론 스페인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내용을 다 이해할 순 없지만, 순례자 한 명 한 명에게 안전과 축복을 염원하는 의식을 치르면 ‘순례자’라는 이름 아래 걷는 이 길 위에 신의 가호가 함께하는 듯 든든하다.

*사진 4-1. 부르고스에 위치한 성당

*사진 4-2. Belorado에서 성당에서 운영하는 기부제 알베르게에 묵고 저녁에 미사에 참석했다. 사진은 성당 내부 중앙이며, 오른쪽에 보이는 철창 안쪽 공간에서 미사가 이뤄졌다.
남루한 옷차림에 커다란 배낭을 메고, 양손엔 스틱을 든 채 흙으로 뒤덮인 등산화로 뚜벅뚜벅 걸어가면, 까미노의 표식인 가리비를 달고 있지 않아도 순례자임을 온몸으로 알리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행색의 순례자들에겐 다양한 호의와 친절이 오간다. 길을 잃었을 경우 어디에 노란 화살표가 있는지 알려주고, 너무 멀리 떨어졌을 경우 히치하이크에 흔쾌히 응해주거나 버스비를 대주면서 순례자들을 옳은 길로 안내하는 마을 주민들은 물론이요, 화덕에 정어리를 구워 빵과 와인을 곁들여 저녁 파티를 열어주는 hospitalero(알베르게를 관리하는 주인이나 봉사자를 말한다), 수도꼭지를 틀면 순례자를 위한 와인이 나오는 Irache의 와인의 샘, 그리고 같은 길을 걷는다는 동지애와 동병상련에서 피어나는 순례자 간의 호의까지, 까미노는 그 어느 곳보다도 따뜻한 인정을 보여준다. 또한 마을 간의 거리가 먼 경우 간이 상점이 그 공백을 메우는데, 기부제가 많고, 무인으로 운영되는 곳도 꽤 있다. 그 배려 하나하나에 무한한 감사를 느끼기에 기부하는 금액으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다만 받은 것을 다른 이들에게, 더 많은 사람에게 베풀 뿐이다. give & take가 확실했던 나는 받은 만큼 꼭 그 사람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이 다섯 번째 까미노라는 한국인 노부부가 기부제 상점에서 기부를 못 하고 나온 것이 마음에 걸려 다음에 왔을 때 가장 힘든 구간에서 수박을 나눠줬다는 얘기를 통해 꼭 당사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물망을 뻗쳐나가듯 그 감사함을 실천을 통해 퍼뜨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사진 5-1. 오아시스처럼 발견한 기부제 상점. 이곳을 운영하시는 분은 까미노에서 만난 여성분과 결혼하셨고, 이곳에서 각종 과일과 음식을 베풀어주고 계신다.
속세와 떨어져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갖고자 순례를 시작했지만, 이는 고독의 길을 걷겠다는 것은 아니다. 800km는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무척이나 고된 거리이다. 그렇기에 나의 에너지가 허락하는 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주고받으려 노력했으며, 필자의 까미노에서 ‘사람’을 빼고 얘기를 할 순 없다. 피레네부터 며칠간 페이스메이커를 해주며 밥도 지어주던 프랑스 청년 Maxime은 굉장히 신실한 가톨릭 신자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찾기 위해 직업을 그만두고 순례길에 올랐다고 한다. 그는 모든 마을의 성당에 들러 기도를 드렸으며, 안 그래도 무거운 배낭에 성경책을 들고 다니며 밤마다 읽고, 언제나 나눔과 배려를 실천했다. 중간중간에 만난 많은 한국인은 이제 막 성인이 된 나와 친구를 언제나 독려해주셨으며, 요리를 못하는 우리에게 정겨운 맛이 듬뿍 담긴 밥 한 끼를 차려주시기도 했다. Isidrio는 스페인 군인인데, 내가 시간에 쫓겨 속도에 집중하는 내 모습에 회의를 느끼고 이곳에 왜 왔는지 생각하던 중에 만나게 되었다. 그는 까미노가 자신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가르쳐준다며 목적을, 길을 잃은 내게 하루하루의 의미를 되새기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또 한 걸음 내디딜 힘을 줬다. 그밖에도 각 나라의 교육 시스템에 과해 얘기를 나누고 여러 분야의 책을 추천해준 León의 영어 교사 Bailey, 하루에 40km 정도를 걸으며 다음 까미노엔 바이올린을 가져와 길에서 연주할 거라던 이탈리아인 Giulio, 영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에 능숙해 대부분의 순례자와 대화를 나누던 Katelyn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 상상치 못한 스펙트럼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사진 6-1. 동행

*사진 6-2. 한국인 저녁 파티
까미노는 길 전체가 집이며, 길 위의 모든 사람이 나의 동료이자 가족이다. 그들과 함께하는 길은 하루에 약 25km라는 긴 거리가 피로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기쁘다. 더 멀리, 더 오래 걸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인 ‘사람’은 그렇기에 더 그립다. 공유하되 결국 각자의 길을 걸어야 하는 까미노에서는 모든 인연이 소중하고, 이별의 아쉬움은 진하게 남는다. 하지만 까미노는 일방통행이다. 내가 오늘 본, 지나쳐갔으며 지나쳐온 모든 사람은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을 함께 걷고 있다. 순례자들에게 노래를 불러주신 수녀님들은 우리들은 계속 길을 갈 테지만 그들은 성당에서 마음으로 우리와 까미노를 동행하실 거라고 하셨다. 당장 내 곁에 없어도 심적으로 언제나 함께하기에, 아쉬움은 의미 없는 미련일 뿐이다. 그렇게 좀 더 먼 시선에서 바라보며 지금의 헤어짐에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Buen Camino! (직역하면 good road지만, 순례자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표현이자 순례자들끼리의 인사말이다) 다만 그들의 앞길을 축복할 뿐이다.

*사진 7-1. 앞서 간 사람들의 자취로 가득한 어느 바의 벽. 반가운 한글이 눈에 띄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에서부터 스페인을 가로지르는 긴 여정인 만큼, 굉장히 다양한 지형을 만날 수 있다. 고도 1500m의 산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메세타 지역엔 양옆은 지평선까지 들판이 펼쳐져 있으며, 위로는 제힘을 못 이겨 거대하게 피어난 구름과 그들을 품어주는 너른 하늘이 있다. 그 아래 내가 서 있고, 앞으로 끝없이 뻗은 길을 걷는다. 하지만 무한히 나 있는 듯한 길에 지겹도록 똑같은 들판처럼 보일지라도, 작물이 다르고, 색과 크기, 곡률이 모두 다르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풍경이 걸어가면서 내게 들어오고, 각도와 보이는 공간이 변하고, 또는 아예 새로운 장면이 펼쳐질 때의 경이는 걸음마다 의미를 더해준다.






*사진 8-1 ~ 8-6
영혼이 개는 듯 거대한 풍경만 멋있는 것은 아니다. 발걸음을 멈추는 그 모든 것에 귀 기울이고, 유심히 들여다보는 시간 또한 굉장히 값지다. 잠시 멈춰 예쁜 꽃 한 번 더 보고, 동물들에게 인사 한 번 더하고, 숲 한가운데에서 숨 한 번 더 크게 들이키고, 냇물 소리를 잠자코 들어본다. 벅차진 않아도 잔잔히 피어오르는 기쁨이 모이고 모여 하루를 풍족하게 해준다.




*사진 9-1 ~ 9-4
대자연 속에서 나의 두 발밖에 의지할 것 없는 한낱 인간에 불과하지만, 32일간 걷고 또 걸어 끝내 Santiago de Compostela에 도착했다. 부산한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아직 실감이 나지 않은 건지 당시엔 아무런 느낌도,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다 점점 차분해져서 밤 10시 정도에 알베르게를 나와 Santiago de Compostela 대성당 앞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조각상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나의 기억과 감정을 곱씹으니 점차 가슴이 먹먹해졌다. 거리 악사들의 흥겨운 노래와 까미노를 끝낸 기쁨에 여기저기 들뜬 사람들 가운데 오히려 더 차분해진 나는 잠자코 생각에 잠겨 성당을 계속 바라봤다.

*사진 10-1. Santiago de Compostela 대성당

*사진 10-2. 순례증명서와 거리증명서. 그리고 뒷면까지 스탬프로 빼곡한 순례자 여권
까미노를 통해 인생이 바뀌었다거나, 가치관의 큰 변화가 일었다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나의 영혼에 알알이 박힌 찬란한 순간들은 기억 속에 반짝이고 있다. 천국으로 가는 모든 길이 천국이라는 말처럼, 성지를 향해 걸어온 모든 날에 나는 성지 위에 서 있었으며, 자연 속에 나를 비우고, 사람과의 교류와 홀로 가진 고찰의 시간을 통해 새롭게 나를 채웠다. 그렇게 어디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나의 천국을 마음속에 그렸다. 검고 축축한 흙길과 자갈밭, 아스팔트 도로와 고대의 돌길, 그리고 태양을 비추는 모래가 깔린 길과 물에 잠겨 보이지 않던 길은 내가 그린 천국으로 나를 인도했다. 내 몸은 까미노를 벗어났지만, 그 방향성을 간직한 채 오늘도 Buen Camino라 외치며 노란 화살표를 찾아 순례를 떠난다.

*사진 11-1
- 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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